오늘 이야기 드릴 이야기는 인공지능 시대 돈버는 업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인공지능에 대해서 이야기는 많은데 보통 언론에서는 빅테크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죠. 화려해보이거나 뭔가 신기하던가 아니면 놀라운 기술이 들어가던가 하는 업체 이야기를 많이합니다. 하지만, 꼭 이런 업체들이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제로 돈을 버는 업체들은 따로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업종이 생겨나면 반복적으로 발생했던 일입니다. 과거부터 여러 사람의 관심을 받았지만 결국은 돈을 벌지 못했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큰 돈을 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국 골드러시 시절의 이야기를 해 볼께요. 이 글은 리바이스의 공식 홈페이지의 글을 참고했습니다. 라바이스는 1853년에 라바이 스트라우스라는 사람에 의해서 설립되었습니다. 골드 러시가 한창이던 시기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도매 상점을 열어, 미국 서부의 작은 소매 상점에 의류와 부츠 등 다양한 물품을 공급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안 나와 있지만 이 때 또 했던 일이 텐트를 만드는 일이어었습니다. 개발되지 않고 아무것도 없던 미국의 서쪽으로 가서 금을 깨려고 하는데 당시 거기에는 호텔이나 모텔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서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중간중간 술집과 민박들이 있었지만 충분하지 않았죠. 그렇기에 텐트에 대한 수요가 많았습니다. 리바이스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량으로 텐트를 만들어서 광산 등에 납품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텐트를 만드는데 사용할 천을 제작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직원들과 함께 상당한 물량의 천을 만듭니다. 그런데 한 직원의 실수로 인해 의뢰인이 요구하지도 않은 파란색 염료로 천을 염색해 버립니다. 당연히 의뢰인은 구매를 거절했고 파란색 천은 애물단지가 됩니다.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이 천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 하다가 당시 험한 일을 하던 광부들이 착용하는 바지가 잘 찢어진다는 걸 떠올립니다. 텐트는 특성상 일반 옷감에 비해 튼튼하다는 것을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생각하게 됩니다. 이래서 이 천을 이용해서 옷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청바지는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리바이 스트라우스와 제이콥 데이비스는 트루 블루 데님에 리벳을 활용한 작업복을 만들었고, 1873년 5월 20일 특허청은 이들에게 특허를 내주었습니다 (특허번호 139,121). “XX”라는 이름의 Blue Jean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바지는 절대 찢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강조해 홍보를 하기 시작하죠. 우리는 현재 청바지를 패션으로 입고 있죠. 그러고 최대한 찢어서 입는 것을 멋이라고 생각하는데 청바지는 원래 찢어지지 않는 옷을 만들기 위해 만든 것임을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여기에서 보시는 것처럼 최초의 광고이자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로고는 양쪽에서 말 2 마리가 잡아 당겨도 찢어지지 않는 바지라는 것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청색은 언급도 없고 당연히 패션은 추측도 할 수 없네요. 지금도 리바이스는 청바지 시장에서 1위죠. 리바이스는 골드러시 시절부터 금을 통해 큰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에게 청바지를 팔아서 큰 돈을 벌었고 아직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일은 골드러시 시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인터넷 초창기 시절인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일어났습니다. 인터넷 산업이 막 뜨기 시절하던 이 시절에 야후, 라이코스, 네이트 등 다양한 포탈 사이트가 있었지만 이들은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마땅한 수익 모델이 없어서 하루가 지나면 망하는 업체들이 속출했지요. 실제로 돈을 벌면서 돈을 벌었던 회사는 웹에이젼시였습니다. 최초 인터넷 시장을 장악한 업체는 홍익인터넷이었습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초기 웹에이젼시 중 한곳이었고 짧은 시간 내에 업계 1위로 올라서게 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약간의 인연이 있었던 회사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인터넷 기술이라는 것이 HTML 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CGI라는 기술이 생기면서 일부 인터넷 프로그램이라는 개념이 생기긴 했지만 아직은 한계가 많아서 인터넷에서 게시판을 만들수도 없었죠. 그래서 주로 인터넷에 대한 논의를 PC통신 동호회에서 했습니다. 저는 PC 통신 중에 나우누리에 있던 인터넷 동호회인 인터넷 스터디 포럼 회장이었어요. 당시에는 당시에는 회장이라고 안 했고 시샵이라고 했거든요. System operator의 약자입니다. 사실 시스템 운영을 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적당한 단어는 아니였지만 당시에는 모두 다 그렇게 불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