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검색 넘어 진실이 있다

doimoi 2011. 3. 4. 09:15

진실은 리얼리티 인페이스를 통해 보인다


우리나라 해군이 해병대가 해적으로부터 인질들을 구출한 ‘아덴만 여명’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현장을 본 사람은 당시 작전에 참여한 몇 사람 외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유는 언론이 그런 일이 있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설사 ‘아덴만 여명’이 실제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조작하고 그것을 방송한다고 해도 우리는 알 방법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덴만 여명’을 성공적인 구출로 생각하는 이유도 언론에서 해당 구출 작전이 성공적이라는 보도를 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TV같은 매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기에 언론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통로로 마치 안경과 같은 역할을 한다. 때로는 인식의 통로가 잘못되어 있으면 진실이 그렇지 않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안경에 빨간색이 칠해져 있으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모두 빨간 색으로 보이고, 비행기를 그려 놓으면 이 세상은 온통 비행기 천지로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언론은 세상을 바라보는 리얼리티 인터페이스(reality interface)이다.


언론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통로의 크기와 방향을 만들어 왔다. 우리는 언론에게 사실의 전모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하기를 요구한다. 많은 사람들이 납득 할만한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다루기를 원하지만 소수의 의견이라도 다양성을 위해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힘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도 소중히 다루기를 우리는 원한다. 최종적으로 기사를 다루는 것은 언론사지만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언론은 움직인다.

당신의 생각은 검색 결과 때문이다

요즘 우리의 리얼리티 인터페이스는 검색이다. 대부분의 정보를 포털 검색을 통해 얻는다. 검색 결과 첫 페이지에 나오는 글들로 우리는 해당 단어의 실체를 인식하게 된다. 검색 리얼리티 인터페이스는 그 범위가 우리가 상상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포털 검색이 개인의 리얼리티 인터페이스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당신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것이 당신의 모습이다. 특히 개인적인 경험이 없는 경우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단적인 예가 인사 담당자가 당신을 검색해 보는 것이다. 검색을 통해 나오는 당신의 과거 글, 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서 쓴 글 등을 통해 당신의 실제 모습과는 상관 없이 인사 담당자는 당신을 평가하게 된다.

포털은 정보를 왜곡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두환’에 대한 평가는 ‘(전) 대통령’으로 국가 지도자적인 모습과 광주 민주화 운동 때 ‘수 백명’을 죽인 학살자 2가지 모습으로 대표 될 수 있다. 인위적인 작업을 하지 않는 구글에서 ‘전두환 대통령’이라는 단어로 검색 했을 때 긍정적인 글이 많이 나오지만 이에 못지 않게 ‘학살자’라고 검색 했을 때도 전두환 관련 수 많은 부정적인 글이 검색 된다. 하지만 네이버의 경우 ‘전두환 대통령’ 이라고 검색 했을 경우 웃는 모습과 함께 수 많은 긍정적 글들이 나오지만 ‘학살자’라고 검색 했을 경우 전두환 관련 글은 찾아보기 힘들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 못지 않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와 글도 많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잊어지고 네이버를 통해 ‘전두환 = 국가지도자’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의 인위적인 조치가 들어가는 방식이 현실을 왜곡하기에 완전히 나쁜 것이고 구글처럼 인위적인 조치가 없는 것이 좋은 것인가? 외국에서도 많은 논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을 거 같다. 인위적인 조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구글이 사회적인 책임을 망각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과거 범죄 혐의로 구속이 된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구글에서 검색하면 온통 과거 범죄 관련 글만 나와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구글을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구글은 인터넷에 관련 정보가 많기 때문에 구글 역시도 해당 정보에 대해 관련 정보를 많이 검색 해 주는 것뿐이지 구글의 책임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누구의 이야기가 맞는 말일까?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좋은 검색인지 바람직하지 않은 정보는 보여주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만약 인위적인 조치가 들어 가는 것이 좋다고 할 때 거짓 된 정보만 검색되지 않게 해야 하는지, 위 사례처럼 사실이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 혹은 명예를 침해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조치해야 하는지 등 복잡한 문제가 존재 한다.

검색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문제는 포털이 언론 이상의 리얼리티 인터페이스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합의 없이 운영 된다는 점이다. 사기업인 NHN의 내부 정책에 의해 담당자가 알아서 판단하는 것이 문제이다. 기존 언론처럼 사회적 합의에 따라 시민단체와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원칙에 따라 운영해야 한다. 물론 현재도 포털 검색에 대해 낮은 수준의 사회적인 합의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음란물 수준의 합의 정도로 그들의 영향력에 비해 그 합의 수준이 매우 낮다. 어떤 원칙에 의해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지금보다 사회적 합의의 수준과 감시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사회적 강자가 쉽게 조작 할 수 있는 것도 문제점이다. TV 등의 매체는 사회적 강자라고 해도 사회적인 감시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인터페이스로 바꾸는 것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검색 결과 조작은 너무 쉽다. 검색의 특성을 알고 있을 경우 아르바이트 10명만 고용하면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네티즌들의 인식을 전환 시킬 수 있다. 요즘에는 온라인 바이럴 마케팅 대행사들이 전문적으로 이런 일들을 대행해 주기도 한다.

사회적 강자는 너무나 쉽게 유리한 방향으로 네티즌들의 인식을 전환 할 수 있지만 사회적 약자의 경우 전 반대의 결과를 가져 오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일반인들이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경우는 대부분 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행동을 했을 경우이다. XX녀 시리즈가 대부분 비난 받는 일반인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인들의 이름이 좋은 일로 회자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검색은 이런 비난의 글을 확산 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검색 결과 기술적 차이가 아니다

검색 결과는 단순히 기술력의 차이가 아니다. 검색 서비스 회사 내부 정책의 차이이고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이다. 검색 결과에 따라 한 개인의 운명, 한 단체의 운명 나아가 국가의 운명이 변할 수 있는 시대이다. 사회적 합의와 이에 따른 감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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